1-4. 필리핀 사람들의 눈 웃음

2023. 7. 8. 12:111-1 이것이 필리핀이다.

90년대 초 마닐라 현지 주재원으로 근무 하면서 여러 가지 현지 문화 이해 부족으로 인한 문화적 충돌을 많이 경험 하게 되었다. 특히나 현지인들과 관련된 인사 문화 이해 부족으로 엉뚱한 생각을 하게 된 웃지 못할 에피소드 하나를 소개 하고자 한다. 바로 다름아닌 필리핀 사람들의 눈 웃음이다. 우리 한국에서는 눈 웃음 친다라던가 눈 꼬리를 흔든다라든가 하는 말은 남녀가 서로를 유혹 할 때 쓰는 표현쯤으로 이해를 한다.

 

필리핀 현지 지사에 출근 한지 오래되지 않은 어느 날 출근 후 사무실에 않아 있는데 현지 경리과 여직원이 출근을 하면서 나를 보더니 창문 너머로 서서 양쪽 눈썹을 올렸다 내렸다 하면서 눈 웃음을 보이는 게 아닌가? 도착 한 지 며칠이 되지 않아 누가 누군지도 도대체 잘 모르겠는데 제법 젊고 예뻐 보이는 여 직원이 그렇게 눈 꼬리를 치니 순간 수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 갔다.

 

현지 모계사회에서 현지 여자들을 조심 하라던 어느 한국인 선배의 말이 주마등처럼 스쳐 지나갔다. 마음을 다잡고 일에 매진 하려고 하는데도 불구하고 그 여직원은 그 다음날도, 또 그 다음날도 계속해서 아침 마다 그런다. 그래서 1주일이 지난 후 현지인 과장에게 난 결혼을 한 남자 인데 왜 자꾸 그 여직원이 나에게 눈 웃음을 흘리느냐고 궁금해서 물었더니 현지 과장의 대답에 아연 실색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아뿔싸 이게 현지인의 인사 법 이라니? 그 동안 혼자서 독백처럼 했던 즐거운 상상 앞에 정말 무안하고 창피 해서 쥐 구멍이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 이었다.

 

이 일이 있고 난 후 안 사실 이지만 필리핀 에서는 약간 멀리 떨어진 사람들에게나 다른 사람과 이야기 하는 타인에게 멀찌감치 서서 방해 되지 않게 눈으로만 살짝 인사를 하는 것이 그들만의 일상의 인사법인 것이다. 그 후로 나도 가끔씩 그런 인사를 하게 되었는데 처음에는 어찌나 어색 해서 힘들었던 부분 이었지만 이제 제법 그들과 같이 눈썹을 치켜 올리며 아침 인사를 하곤 한다.

 

이런 나의 모습을 보면서 이젠 제법 필리핀 사람의 모습이 보인다고 귀띔을 해 주는 현지인이 차츰 늘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렇게 다양성을 수용 하는 능력을 두고 우리는 글로벌 화(Globalization)라고 한다.

 

전세계 약 70억 인구의 다양한 사람들 속에서 현지 문화를 잘 이해하고 현지를 바라보는 고정된 시각이 자연스레 융화되고 이해 될 때야 말로 진정한 문화 팍스 코리아나(Cultural Pax-Coreana)의 시대가 오지 않을까 꿈꾸어 본다.

 

1- 4 필리핀 사람들의 눈 웃음 (Source: Paranaque City Hall, Metro Manila)